W.제이치(blog.naver.com/jae_ch) -2차 수정을 금합니다! . . . -start- 오늘 아침은 민호의 목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깼다. 이런게 행복이구나 싶었다. 질잤어? 묻는 말에 미소로 답했다. 밥을 차려줄테니깐 기다려. 응.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내 머리를 한번 쓰다듬더니 문을 닫고 나가는 민호였다. 방안이 한순간에 조용해지며, 혼자가 되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몰려오는 두려움에 후다닥 방문을 열고 나갔다. 그러면 보이는 뒷모습 하나. 바로 내 사람. 세상에서 오직 나만 사랑해줄 단 한사람, 최민호이다. . . . 나는 늘 두려웠다. 혼자 남겨질 까봐. 민호에 대한 나의 사랑이 보기 거북하다며 내 곁을 떠난 친구들이 꽤 많았다. 그래도 지금 내 맞은편에 앉아서 딸기 스무디 따위를 홀짝이고있는 김기범은 그중 한명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민호와 있었던 일을 끝까지 잘 들어주는 사람은 기범밖에 없기에, 난 주말에 있었던 일들을 말해주었다. 눈을 떴는데, 민호가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고 하니, 기범이 씁쓸하게 웃는다. 늘 그렇게 웃기에 그러려니했다. 그래도 밝게 활짝 웃는게 좋은데. 아, 민호가 내 웃는 모습이 예쁘다고도 해줬다..? 그래, 맞는말이네. 내말에 착실히 대답해주는 기범에 기분이 좋아져서 나는 다시 떠들기 시작했다. 주말 내내 있었던 일들을 모조리 다 말해주다보니 시간이 벌써 꽤 지나있었다. 어둑어둑한 하늘을 보고 난 이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민호가 기다리겠다." "응. 어서 가봐." "내 얘기 들어줘서 고마워." "뭘." 기범이 눈으로 가라고 재촉하는것 같아서 난 먼저 일어섰다. 손을 한번 흔들어주고는 카페 입구로 향했다. "종현아..!" 몇걸음 떼기도 전에 부르는 기범이 때문에 난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보았다. 응? 하며 바라보면 기범이 조금 걱정이 담긴 목소리로 말한다. "밥.. 제때 잘 챙겨먹으라고." 기범의 말에 순간 가슴이 철렁해서 소리내서 웃어버렸다. 나한텐 민호가 있는데 자꾸만 까먹나보다. "민호가 밥 잘 챙겨줘서 괜찮아!" 내가 크게 소리치자 기범이 한층 더 걱정스러운 표정이 된다. 그런데 왜 자꾸 살이 빠지냐.. 혼자 중얼거리는 기범의 입모양을 읽었지만 못본척 카페를 떠났다. 집에가면 민호가 날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그럼 난 언제나 처럼 민호의 품에 뛰어들며 말하겠지. 보고싶었어.. . . . 사실 많이 불안했다, 나는.. 난 민호가 좋은데.. 사람들은 민호와 내가 못마땅한 것처럼 여겨서. 심지어 어떤 사람은 민호를 없는 사람 취급하기도 했다. 그때 받은 상처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너무 아팠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인데.. 나도 사랑을 해보고 싶다는데 왜 다들 막는건지.. 민호에 대해 구체적으로 아는게 없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민호가 무슨일을 하고, 원래 어디 살았고, 부모님이 누구고 하는것 따위가 사랑을 하는데 꼭 필요한 것일까? 난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돈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나도 대학 졸업을 하고 일년동안이나 알바만 하고있는데. 내 나이 또래때 돈이 많은게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민호랑 같이 호화로운 식당에 가거나, 백화점에서 쇼핑을 한적은 없어도 난 행복했다. 특히, 민호가 내게 택배로 곰인형을 보냈을 땐, 너무 행복했었다. 난 작지만 소소한 기쁨이 좋았다. 그래, 내가 행복하면 된거지. . . 달칵- 현관문을 여니, 사방이 어두워서 너무 놀랐다. 이 시간에 없을리가 없는데.. "민호야.." 조심스레 민호를 불러보았다. 하지만 대답이 없었다. 무서웠다. 민호가 없으면 어떻게 하지.. "민..호야.. 있으면 대답해.." 확신이 없는 초라한 내 목소리가 싫어서 입을 다물어 버렸다. 민호가 없으면 더 초라해 질텐데.. 있겠지. 있을꺼야. 민호가 날 두고 어딜가겠어. 희망을 가지고 거실까지 조심조심 걸어가서 불을 켰다. 어두운 실내가 확- 밝아지면서 거실이 눈에 들어왔다. 보통 때와 같은 따뜻한 거실이 아닌, '텅 빈' 거실이.. 대체 이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멍하니 서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찾아볼 생각은 들지도 않았다. 어디선가 훅- 하고 다가온 허망감과 공허함이 날 짓눌렀다. 바닥에 눈물이 툭툭- 떨어졌다. 무서운데, 뭘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두려움이 자꾸만 커져갔다. 다리에 힘이 풀리는 바람에 비틀거리다 결국 발을 헛딛이고 말았다. 바닥에 그대로 주저 앉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등 뒤에서 누군가가 날 붙잡아 주었다. 날 안아오는 그 품이 너무도 따뜻해서 조금 슬펐다. "미안해." "흐윽.. 흐으.." "미안해 종현아." "흡.. 깜짝, 놀랐.. 잖아..." 눈물을 뚝뚝 흘리며 품에서 빠져나와 뒤돌아서 마주보고 서니, 미안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 보고있는 민호가 있다. 민호는 그의 큰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쥐고는 엄지로 눈물을 닦아내 주었다. "울지 말고." "흐읍.. 불안해.. 너 때문에.. 으흑.. 너무 불안해.." 내가 투정을 부리듯 말하자 민호가 내 얼굴을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난 민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민호가 내 등을 토닥여주며 위로를 해주었다. 민호를 꼭 끌어안고 서있는데, 민호가 조심스레 내 얼굴을 들어올렸다. 울어서 퉁퉁 부은 눈으로 민호를 올려다보니, 민호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우는것도 예쁘다, 우리 종현이." 그말에 코끝이 괜시리 빨개지는 느낌을 받으면 내게 가까이 다가오는 민호의 얼굴. 난 가만히 눈을 감았다. 민호의 입술이 닿아왔다. 좀 더 민호의 입술을 느끼고 싶어서 고개를 살짝 트니, 금새 쪽- 소리를 내며 떨어진 입술이다. 아쉬움이 남아서 입술을 삐죽이며 민호를 보았다. 여전히 미소를 짓고있는 그이다. 민호는 언제나 날 너무 조심히 다뤄서 문제이다. 같이 사귄지 몇년째인데, 관계는 커녕 키스도 몇번 안해본 우리였다. 그래서 내가 불안했던 것일까..? 갑자기 드는 의문이다. 만약 민호와 내가 함께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낄수 있다면 자꾸만 드는 불안감이 없어질 수 있을까...? "민호야." 내가 부르자, 응? 하며 다정하게 날 보는 민호이다. 난 입술을 꾹- 깨물었다. 한번도 민호한테 스킨쉽을 먼저 요구한 적이 없었던 나였기에.. 마음을 굳게 먹고, 입을 열었다. "우리......" "응." "...같이.. 잘래..?" "......." 내 말에 놀란건지 큰 눈이 더 커진 민호이다. 난 혹시나 민호가 싫어하는 건가 하고 눈치를 보다가 결국엔 민호의 눈을 피해버렸다. 그냥 평소처럼 같이 샤워를 하고 꼭 끌어안은채 잠드는 것도 괜찮은데.. 괜히 말했나.. 속으로 내 스스로를 욕하며 후회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민호가 내 어깨를 잡는다. 평소보다 조금 힘이들어간 그 몸짓에 조금 놀라서 머뭇거리며 민호를 올려다보니, 지금까지 볼수 없었던 표정을 짓고있다. 무언가를 억누르고 있었다. 난 그것이 무엇인지 민호의 표정을 통해 알아낼 수 있었다. 그것은.. 욕정이었다. . . . 어젯밤에 무슨일이 있었는지 너무 생생히 기억이 났다. 내가 바라던 것이 이루어졌다. 난 민호와 잤다. 꼭 끌어안고 자던 평소랑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민호는 여전히 부드러웠고, 따뜻했다. 하나도 아프지 않았는데 그는 자꾸만 내가 아플까봐 걱정했다. 그래도 날 배려해 주고 있는 민호에 난 또 행복을 느꼈다. 그리고 민호는, 내게 무수히 많이 말해주었다. 사랑한다고.. 그럼 나는 수줍게 대답했다. 나도.. 나도 사랑해, 민호야.. 왠일인지 아침에 눈을 뜨니 민호가 없었다. 가끔 그런 날이 있었다. 난 민호가 일찍 일을 갔나보다 하고 생각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어젯밤의 흔적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휴지통에 버려진, 아직 채 마르지 않은 액이 묻어있는 휴지만이 어젯밤의 정사를 말해주고 있었다. 난 부끄러운 기분이 들어 빨리 화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거울을 보니 여실히 들어난 내 알몸이 보였다. 아무일도 없었던것 처럼 흔적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너무.. 아무렇지도 않아서 이상했다. 처음으로 해본 관계인데.. 아프다고 다음날 일어나지 못한다거나, 온몸에 흔적이 남는다던 얘기들은 다 거짓인가보다. 아니, 어쩌면 민호가 날 너무 소중히 대해서 이런것일 수도 있고.. 사랑받는다는 것이 너무 행복해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씻고 나왔다. 금새 옷을 차려입고, 카페로 나갔다. 오늘은 짜증나는 손님이 와도 잘 받아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기범이가 먼저 와있었다. 그런데 들어가지 않고, 카페 문앞에 앉아있었다. 난 기범에게로 갔다. "왜 안들어가고 있어?" "너도 나올줄 알았어. 사장님 여행 가신다고 오늘이랑 내일 카페 쉰다고 했잖아." "맞다. 깜빡했네." 내 말에 기범이 그럴줄 알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어쩌지.. 그냥 돌아가야하나.. 빈 집에 혼자 있기가 싫어서 기범에게 물었다. "우리집 갈래?"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이는 기범이다. 집에 민호가 있으면, 소개시켜주고 싶은데.. 내 중얼거림을 들었으면서도 기범은 답이 없다. 난 한숨을 한번 쉬고는 기범과 함께 우리집에 왔다. "민호야! 안에 있어?" 아직 안왔나 보네.. 아무 대답도 없는걸 보니, 아직 안들어온 모양이었다. 신발을 벗고 안에 들어와서 바로 부엌으로 향했다. 그래봤자 거실과 바로 붙어있는 조그마한 부엌이지만.. "여기 진짜 오랜만에 온다." "그러게. 너 제작년인가? 한번오고 안왔잖아." 차라도 내주려고 물을 끓이며 말했다. 기범이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말했다. "바뀐게.. 하나도 없네." "그럼. 그 사이에 뭐가 바뀌겠니." "액자같은 것도 하나 없고.. 넌 걔랑 사진도 안찍어?" "..민호가 사진찍는거 별로 안좋아해." 기범이 고개를 한번 끄덕이곤 내 방으로 들어갔다. 난 녹차티벡을 꺼내서 컵에 놓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기범이가 단 걸 좋아하는 것은 알지만, 녹차밖에 없어서 조금 미안했다. 차를 끓여서 방안으로 가지고 들어가니, 기범이가 방 한쪽에 가만히 서있다. 난 테이블 위에 차를 올려놓고 미안함을 담아 말했다. "미안. 녹차밖에 없," "너. 이거 뭐야?" 내 말을 끊고 말하는 기범에 난 잠시 당황해서 기범을 보았다. 뭔데? 그쪽으로 가면서 묻자, 기범이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킨다. 기범의 검지손가락 끝을 주욱- 따라가서 보이는 것은 휴지통이다. 난 웃으면서 말해주었다. "휴지통이잖아, 기범아." "그거 말고. 그 안에." 난 그제서야 기범이가 묻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리곤 괜시리 목소리를 조금 낮춰서 소곤거리며 말했다. "나, 어제 민호랑 잤어." "......뭐?" "민호랑 섹스 했다고, 어제." "......." 내 말에 기범의 표정이 굳었다. 난 기범에게 섹스가 그다지 위험하고 아픈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어제의 일을 설명 해주었다. 괜찮았다고, 하나도 안아팠다고, 오늘 일어났을 때에도 멀쩡했다고.. "민호랑 섹스는 처음 해보는 거였는데 생각보.." "그만해." "응?" 기범이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난 잘못 들은건 줄 알고 되물었다. "그만 하라고." "뭘? 섹스했던 얘기..? 근데 진짜 난 아무렇지도 않았.." "그만하라고!!!!!!"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놀라고 말았다. 기범이가 왜 저러는 거지..? 속으로 걱정하고 있는데, 기범이가 다음에 내게 한 말은 내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제 그딴 망상속에서 살지 말라고 멍청아!! 그만할 때도 됬잖아!! 대체 몇년째야 지금!!! 섹스..? 하, 지금 섹스를 했다고 했어?! 대체 어떻게?!!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이랑 어떻게 섹스를 하냐고 이 병신아!!" "기...범아.." "말리고 싶었어, 처음부터. 근데, 존나 불쌍하잖아. 내 멀쩡하던 친구가, 지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서 갑자기 미쳐버렸는데. 그래서 니가 하는 헛소리 들어주고 있었어. 근데.. 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병신처럼 살꺼야?! 대체 언제까지 니 상상속에 빠져서 살아갈꺼냐고!!!!" "......." 기범의 말에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기범이는 민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나한테 왜 이러는 거지..? 대체 왜.. "이젠 너가 알아서 해. 민혼지 뭔지 하는 있지도 않는 새끼랑 계속 잘 해보던지 니 맘대로 해." "....기범아..!!!" . . . -기범's story- "씨발.." 미친놈. 병신같은 놈. 바보같은 놈. 속으로 계속 욕을 하면서 걸어갔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에 드는 생각은.. 존나 불쌍한 놈.. 아까 소리를 마구 지른게 후회는 된다. 근데 김종현도 이제 깨달을 때가 되었다. 그런 허상속에선 빨리 빠져나와야 그한테도 이로울 테니깐.. 김종현은 외동이라 부모님한테 많은 사랑을 받고자랐다. 별명이 마마보이일 만큼 부모님께 그만큼 잘 해드리기도 했고. 그런데.. 웃기게도, 김종현의 부모님은 연쇄살인범에 의해 무참히 살해되었다. 김종현의 눈 앞에서. 그리고 더 잔인하게도, 그 살인범은 제 2의 자신을 만들기 위해, 그 장면을 다 목격해버린 김종현만은 살려두었다. 대신 김종현도 멀쩡하진 않았다. 그 또라이 새끼한테 강간을 당했으니깐.. 다행히 그 잔인했던 일이 있고난 후에 김종현은 생각보다 멀쩡해 보였다. 고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혼자서 대학도 잘 가서 연애도 하니 말이다. 내게 종종 연인에 대해 말해주었다. 동성연애라 처음엔 놀라긴 했지만 받아들여 주었다. 나에겐 김종현이 말쩡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한 거니깐. 하지만.. 갈수록 뭔가 이상했고,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 허다했다. 김종현의 연애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은 조금 지난 다음에야 알았다. 김종현은 그때, 그리고 지금.. 자신의 상상속의 인물과 연애를 하고 있었다. 충분히 충격적이었지만.. 불쌍하니깐..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고나서 하나둘씩 그를 떠나가고 있는데, 나까지 떠나면 김종현은 진짜 혼자가 되어버리니깐 마음편히 떠날 수도 없었다. 하루는 상태가 너무 걱정이 되서 건강검진 받을꺼라고 거짓말을 한 다음, 정신과에 데려간 적이 있었다. 의사한테 들은 김종현의 증세는 바로 애정결핍.. 웃기고 황당했는데, 이해는 갔다. 삶의 대부분을 의자하고 있는 부모님이 떠나갔는데 여렸던 김종현이 충격을 받은건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강간까지 당했으니 그의 마음이 얼마나 쓰리고 아팠을지는 나조차 상상도 되질 않았다. 하지만 사태가 많이 심각해 지더니, 급기야 자기가 곰인형을 사서 민호의 이름으로 자신한테 보내는 짓까지 했다. 계속 말해볼까 하고 때를 기다리고 있는데, 결국 오늘 터지고 말았다. 누가봐도 자위를 한다음, 흘린 정액을 닦아낸 휴지였다. 그런데.. 섹스라니.. 정도가 지나친것 같았다. 무엇을 향한 것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니.. 당연한거 아닌가? 진짜로 관계를 가진것이 아니니깐. 김종현의 친구로서, 제발 제정신으로 돌아오길 바랬다. 화를 삭히며 김종현의 집 앞을 서성이다 갑자기 불안한 생각이 들어서 집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설마.. "......." 대체.. 이렇게 위험한 약은 왜 가지고 있었던 거지. 마치 준비되어 있었던 것 처럼.. "욱.. 우읍.." 어떻게 그 짧은 새에 이렇게 축 늘어져서 차갑게 식어버릴 수가 있는거지..? "우윽.. 읍.. 흐.." 그리고 죽어가는 그 고통속에서 인상을 쓰면서도 끝까지 천진난만하게 웃고있으면.. 대체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 "이.. 병신새끼야...!!!!!" . . . -side story- 일년에 한두번, 생각날 때마다 납골당을 찾아갔다. 병신같았던 내 친구. 마지막까지 웃고 있었던 지랄맞은 내 오랜 친구.. 오늘이 바로 일년중 한두번에 속하는 날이다. 가끔 이렇게 우울하고 아무것도 하기싫은 날엔 가서 혼자 중얼거리다가 온다. 그런대로 미치기 전까진 내 고민도 잘 들어주고 해결책도 종종 꺼내주던 제법 똘똘한 애였으니깐.. 납골당 근처에서 국화꽃 몇송이를 사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서 오른쪽으로 돌면, 유리 안쪽의 김종현 사진이 홀로 외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어째 사진속에서도 저렇게 해맑게 웃고 있는건지.. 종현아.. 아직도 너에게 미안한 게 좀 남아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렇게 널 찾아오는 거겠지. 나도 연애라는 걸 하는데 말야, 그게 쉽지만은 않다. 너는 몇년동안 혼자서 연애하느라 참 힘들었겠다..? 민호라는 인간 말이야, 니 상상속의 인물이긴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꽤 괜찮았던것 같다. 나한테도 그런 애인 소개시켜주면 안돼냐? 치사하게 민호랑 위에서 놀지만 말고. 사진에 붙은 먼지를 호- 불어서 떼어낸 다음 난 미련없이 뒤돌아서 나왔다. 오늘은 정말 기분이 별로다. 입구로 가서 문을 열려고 했는데, 누군가가 국화꽃 꽃다발을 들고 들어오며 문을 열어주었다. 찬바람이 쌩하니 불어서 몸을 최대한 움츠리고 문을 열어준 사람한테 예의상 고개를 한번 숙이고 그 사람을 지나쳐 갔다. 밖으로 나와서 문득 드는 생각에 안을 쳐다보았다. 문을 열어준 검은 정장을 깔끔히 차려입은 그 사람은 키가 훤칠히 컸고, 옆모습이 꽤나 날카로웠다. 김종현의 상상속의 인물도 키가 크고 잘생겼다고 했는데.. 뭐야. 왜 갑자기 이런생각을.. 난 고개를 절래절래 젓고는 다시 뒤돌아 가려고 했다. 그런데, 무언가가 내 발목을 붙잡았다. 난 그 자리에 서서 찬 바람을 맞으며 그사람이 안쪽으로 끝까지 걸어가다가 코너를 도는 것을 보았다. "...어......?" 무언가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 코너를 돌면 휑한 공간 가운데에 오직 김종현자리 하나만 있는데.. . . . + "어..엄마!!!! 이 개새끼가..!!!" "민호야..!! 어서 도망..윽..!!!" "엄마!!! 엄마!!!!!!" 눈앞에서 어머니의 처참한 살해장면을 목격했다. 그리고 그 강도는 어머니가 죽은걸 확인한 후 날 보고 미소를 지었다. 두려웠는데, 차라리 죽는게 낫다고 생각했던것 같다. 하지만.. 그는 날 살려둔 채, 손으로 인사까지 하며 그대로 도망쳤다. 아버지는 일찍부터 돌아가시고 없었으므로, 난 한순간에 혼자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잔인했던 기억이다. 복수를 해야한다는 집념에 사로잡혔다. 내가 미친걸 나도 인정한다. 그 강도에 대한 나의 분노는 엉뚱한 사람들 에게로 표출되었고, 김종현은 피해자 목록중 내가 눈여겨 보던 인물중 한명이었다. 날 이렇게까지 망가뜨린 사람에 대해 똑똑히 복수할 거리가 필요했고, 김종현은 그 도구가 되었다. 늘 하던대로 그의 가족들을 모두 살해했다. 쾌감마저 느끼고 있으니 난 미친게 틀림없었다. 그가 두려움에 가득찬 눈을 하고 날 보고있었다. 그에게 다가갔다. 넌 제2의 내가 되는거야. 내 말에 그가 울었던 것 같다. 자기한테 왜그러냐고 애원을 했던것 같기도 하고..순식간이었다. 내가 다른 욕망을 느낀건. 강간하려던 의도는 원래 없었지만, 울며 애원하는 모습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색정적이었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살인충동은 생겨도, 성욕은 별로 없었는데. 이건 다 네 탓이야. 한치의 미안한 감정도 없이 그를 품었고, 망가진 그를 흡족하게 보다가 곧 그곳을 벗어났다. 몇년동안 살인같은건 전혀하지 않았다. 마음속에 가득차있던 앙금이 어느정도 녹은 느낌이랄까. 난 이정도로 괜찮아 졌는데, 그는 어떨지 궁금했다. 몇년 전 나처럼 바닥 끝까지 추락한 인생을 살고있을까. 하지만, 난 그를 찾고나서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그런 일을 겪고도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갈 수 있는거지? 화가났다. 어떻게든 이 분노를 풀어야겠다는 생각에 그에게 접근했다. 웃겼다. 그는 몇년전의 일을 마치 다 잊은것 같았다. 심지어 날 알아보지도 못했다. 그래서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 연애. 나조차 생각지도 못했던 방식이다. 그를 관찰하는건 살인을 하는것보다 훨씬 복수가 제대로 되어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연인인척, 그를 사랑하는 척 그의 곁에 머물렀다. 그는 내게 자신의 모든것을 내어주었다. 그 모습이 너무 흡족해서, 네가 그렇게도 사랑하는 내가 바로 너의 원수이노라고 말해주고픈 마음이 들기도 했다. 두세달쯤 지났을 때, 그제서야 난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위험했다. 그에게 복수를 한다는 쾌감이 아니라, 연민의 감정 비슷한것이.. 난 내 정체를 들키면 바로 잡혀들어가기에, 내게 그런 감정은 사치였다.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그의 곁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정말 조용히, 소리없이. 하지만 마지막 선물은 남겨두었다. 청산가리(쥐약의 주성분). 이건 그에게 꼭 필요할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잠든 그에게 그것을 쥐어주고 떠난건, 어머니를 잃고나서 내가 지금까지 해온 행동들 중 가장 인간다운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말 오래도록 그를 찾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주변인으로 부터 그의 상태는 자주 체크했다. 아직도 그가 그의 오랜 연인과 헤어지지 않았다는 말에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드디어 내가 바라던 대로 된 것이다. 이제 제멋대로 망가진 그를 구경만 하면 되었다. 처음엔 꽤나 흥미로웠다. 하지만 어딘가 불편했다. 내가 이상해졌다고 생각했다. 미친짓을 많이해서 이젠 진짜 미쳤나보다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가 몇년동안 날 그리며 사는걸 보는게, 생각보다 많이.. 괴로웠다. 그런 내 자신에게 화가났다. 날 위해서 벌인 짓인데, 내가 도리어 더 괴롭다니.. 나에대한 그의 믿음이, 그리고 사랑이 빨리 깨져버렸으면 했다. 그 다음 몇년 동안은 아예 그의 소식이 닿지 않는데로 가버렸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도망간 거나 마찬가지였다. 내 감정을 좌지우지하는 그가 두려워서. 그리고 그 견디기 힘들었던 괴로운 시간들이 흐른 후, 난 드디어 그가 내가 준 선물을 꺼내 먹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기뻤다. 이로써 내가 결국엔 그를 사랑해버렸다는 것을 인정했다. 내 복수는 실패했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모든게 다 끝나버렸으니깐. 이건 아마 온 세상 사람들이 다 기뻐할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수 년간 잡지 못했던 연쇄살인범 최민호도 곧있으면 죽을 테니깐. 국화꽃 꽃다발을 샀다. 이게 정말 마지막 선물이 될테지. 그가 있다는 납골당 안으로 들어서며 누군가를 스쳐지나간것 같기도 했다. 그 사람이 누군진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내게 중요한 건 이제 곧 그를 본다는 것. 웃음이 나왔다. 참 오랜 시간에 걸친 복수였다. 그리고 결국엔 나의 명백한 패배가 드러나며, 복수는 실패로 끝났다. 납골당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며 주머니를 확인했다. 예전에 그에게 주었던 선물이 내 주머니에도 고이 들어있었다. 코너를 막 도는 나의 발걸음이 어쩐지 가볍다고 느꼈다. . . . Imagination fin.